
매년 약 14,000톤의 자외선 차단제가 바다로 흘러들어 갑니다. 저는 이 숫자를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호핑투어를 하다가 처음 실감했습니다. 배 직원이 안내방송으로 "하와이는 산호를 파괴하는 성분이 든 선크림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그때까지 선크림이 바다를 망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 선크림이 산호를 죽이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 성분은 옥시벤존(Oxybenzone)과 옥티노세이트(Octinoxate)입니다. 이 두 성분은 유기자차, 즉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에 주로 쓰이는 성분으로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피부를 보호합니다. 문제는 이 성분들이 물에 씻겨 바다로 유입될 때 벌어집니다.
2016년 던스(Downs) 박사팀이 Archives of Environmental Contamination and Toxicolog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옥시벤존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6개 분량의 물에 단 한 방울만 들어가도 산호 유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산호 유생이란 산호초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유충 단계의 산호를 말하는데, 이 단계에서 피해를 입으면 산호초 전체의 재생 능력이 뿌리째 흔들립니다(출처: NOAA 국립해양서비스).
옥시벤존은 산호의 내분비계 교란(Endocrine Disruption)을 일으킵니다. 내분비계 교란이란 생물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해 정상적인 성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산호가 스스로를 지키는 면역 체계가 무너지는 것인데, 이 결과로 나타나는 게 바로 산호 백화 현상(Coral Bleaching)입니다. 산호 백화 현상이란 산호가 공생 조류를 잃고 하얗게 탈색되며 죽어가는 현상으로, 한번 진행되면 회복이 극히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저는 유기자차 선크림을 주로 쓰고 있었습니다. 피부에 잘 스며들고 백탁 현상이 없으니까요. 그게 산호한테 독이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전 세계 다이빙 성지에서 선크림을 막기 시작한 이유
하와이가 2021년부터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가 포함된 자외선 차단제의 판매 자체를 법으로 금지한 것은 그냥 나온 조치가 아닙니다. 팔라우는 한발 더 나아가 2020년부터 유해 화학 성분 10가지가 포함된 제품의 반입 자체를 금지하고, 위반 시 즉시 압수와 벌금을 부과합니다. 태국도 2021년 모든 국립공원에서 유해 선크림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멕시코의 칸쿤, 코수멜 등 카리브해 인기 다이빙 포인트에서도 유사한 규제가 확산 중입니다.
제가 탔던 하와이 마우이섬 호핑투어 배도 그 연장선이었던 거죠. 유해 선크림을 가져왔어도 쓸 수 없고, 대신 배에서 산호 친화적인 선크림을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받아 발랐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발리자마자 온 가족이 얼굴이 허옇게 떴거든요. 귀신같다며 서로 보고 웃었지만, 환경을 위해 뭔가를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 꽤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에서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만약 유해 선크림만 막고 대체재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관광객들은 오히려 반발했을 겁니다. 산호 친화적인 선크림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불편함 없이 규제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만든 거니까요. 규제와 편의를 함께 설계한 이 방식이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프 세이프 선크림, 어떻게 골라야 하나
문제는 시중에서 '리프 세이프(Reef-Safe)'라고 적힌 제품이 넘쳐나지만, 이 표현에 대한 국제 법적 정의가 없다는 겁니다. 리프 세이프란 산호초를 비롯한 해양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성분만 사용한 제품을 의미하는데, 이 기준이 법제화되지 않아 사실상 누구든 라벨에 적을 수 있는 마케팅 문구로 전락해 있습니다.
그래서 앞면 문구보다 뒷면의 전성분 표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피해야 할 성분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Oxybenzone (Benzophenone-3)
- Octinoxate (Ethylhexyl Methoxycinnamate)
- Octocrylene
- 4-Methylbenzylidene Camphor
- Avobenzone, Homosalate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대안은 논-나노(Non-Nano) 무기자차입니다. 무기자차란 징크옥사이드(Zinc Oxide)나 티타늄디옥사이드(Titanium Dioxide) 같은 광물 성분이 피부 위에서 빛을 물리적으로 반사해 자외선을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논-나노'란 입자 크기가 100나노미터 이상으로 커서 산호 세포 안으로 흡수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나노 입자는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어 생태계에 위험하지만, 논-나노 입자는 그 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 경험상 이 무기자차의 단점은 백탁 현상입니다. 하와이에서 발라봤을 때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도 아로마티카나 닥터지 같은 브랜드에서 무기자차 라인을 강화하고 있고, 예전보다 발림성이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제품 뒷면에서 Zinc Oxide 또는 Titanium Dioxide만 차단 성분으로 표기된 제품을 고르면 됩니다.
몇 년 전,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 친구가 저에게 연락을 해왔는데, 마침 그 친구는 선크림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판매하는 선크림은 Coral Friendly 선크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선크림을 사용해보고 산호를 죽이지 않는 친환경 자외선 차단제도 성능이 많이 개선되어 일반적으로도 사용하기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부터는 이런 무기자차 선크림을 찾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좋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바다가 살아나지 않는다
리프 세이프 선크림이 환경에 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제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여전히 소수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격이 비싸고, 바르기가 번거롭습니다. 일반 소비자는 환경보다 가격과 사용감에 먼저 반응합니다. 실질적으로 이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하와이처럼 법적으로 유해 성분 자체를 규제하거나, 친환경 선크림을 생산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인증 제도 같은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이 병행되어야 시장 자체가 바뀝니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다양해지고 가격이 내려가야, 비로소 리프 세이프가 특별한 선택이 아닌 당연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Archives of Environmental Contamination and Toxicology).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지금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놀고 싶다면, 지금 쓰는 선크림 뒷면을 한번 뒤집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우리 바다를 아끼는 가장 쉽고 확실한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선크림을 바꾸는 것은 해양 보호의 아주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플라스틱이 어떻게 산호초를 파괴하는지, 그리고 국제적인 환경 가이드라인인 플라스틱 제로 다이빙 (산호 보호, 그린핀스, 지속가능성) 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글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선크림을 안 바르는 것을 넘어, 바다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다이버가 되는 법을 확인해 보세요!
참고: https://oceanservice.noaa.gov/news/sunscreen-corals.html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00244-015-02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