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섬에서 다이빙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발리 스쿠버다이빙 (난파선, 만타, 개복치)을 다섯 번 다녀오는 동안 길리 트라왕안을 두 번 방문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자동차가 없는 불편함이 걱정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그런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길리 제도는 단순히 예쁜 바다가 아니라, 다이버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었습니다.
길리까지 가는 길, 불편함을 알고 가야 후회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길리 트라왕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배에서 내려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는데, 길이 흙바닥에 울퉁불퉁해서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마차를 타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예상보다 꽤 비쌉니다. 그래도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 10분이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섬에서 나갈 때에는 마차를 탔답니다. 마차를 타는 것도 길리에서만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경험이었어요.
길리 트라왕안은 섬 전체에서 내연기관 차량 운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동 수단은 도보, 자전거, 그리고 마차가 전부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지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면 이게 오히려 이 섬만의 매력이 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매연도 없고 엔진 소리도 없으니 공기가 다릅니다.
저는 이 정책이 단순한 관광 콘셉트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섬 운영을 위한 진짜 결단이라고 봅니다. 작은 섬에 내연기관 차량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지금의 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도 편리함과 타협하지 않고 이 정책을 유지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불편함을 미리 알고 가면 오히려 그 불편함이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캐리어보다는 배낭을 추천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길리처럼 이동 수단이 제한적인 곳일수록 짐을 싸는 단계부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짐을 줄이는 것을 넘어, 장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궁금하시다면 제가 최근 정리한 해외 스쿠버다이빙 트립 준비 (장비, 기술, 일정) 글을 꼭 참고해 보세요. 길리 트라왕안 여행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터틀 헤븐과 샤크 포인트, 초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유
길리의 다이빙 포인트들이 왜 초보부터 고수까지 모두에게 잘 맞는지는 직접 들어가 보면 바로 이해됩니다. 제가 다이빙한 터틀 헤븐과 샤크 포인트 모두 숙소에서 보트로 멀지 않은 거리였고, 조류나 시야 면에서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길리 해역은 인도네시아 통과류(ITF, Indonesian Throughflow)의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ITF란 태평양의 해수가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거대한 해류 흐름으로, 길리 인근 롬복 해협을 통과하면서 강한 조류와 용승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용승 현상이란 심해의 차갑고 영양분이 풍부한 물이 표층으로 올라오는 현상으로, 산호초 생태계를 유지하고 다양한 원양성 어류(Pelagic)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길리에서는 드리프트 다이빙(Drift Diving)이 가능한 포인트도 많습니다. 드리프트 다이빙이란 조류를 타고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하는 다이빙 방식으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넓은 수중 지형을 탐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터틀 헤븐은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거대한 산호 언덕인 피너클(Pinnacle)을 중심으로 거북이들이 쉬거나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직접 봤는데 정말 놀랐던 건,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 한 마리가 그 포인트를 텃세라도 부리듯 느긋하게 떠다니고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크기가 워낙 커서 처음에는 순간 다른 생물인가 싶었을 정도입니다. 주로 서식하는 종은 푸른바다거북(Chelonia mydas)과 대모거북(Eretmochelys imbricata)으로, 두 종 모두 IUCN 적색목록에 등재된 보호종입니다.
길리의 주요 다이빙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터틀 헤븐(Turtle Heaven): 길리 메노 대표 포인트. 피너클 지형에 거북이가 상시 서식. 수심이 낮아 초보 다이버에게 최적.
- 샤크 포인트(Shark Point): 길리 트라왕안 서쪽. 수심 18~30m권. 화이트팁·블랙팁 리프 샤크와 잭피쉬 떼 출몰.
- 바운티 렉(Bounty Wreck): 옛 부두 구조물이 침몰한 난파선 포인트. 연산호·부채산호가 자라나 있으며 중급 이상이면 무리 없이 탐험 가능.
샤크 포인트도 제 경험상 이름이 주는 압박감과 달리 다이빙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리프 샤크들이 유유히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위협적이기보다는 그냥 자기들 세상에 잠깐 끼어든 느낌이었습니다.
바이오락과 수중 조각상, 길리가 단순한 다이브 스팟이 아닌 이유
길리 제도를 단순히 예쁜 산호초가 있는 섬이라고만 보면 절반밖에 모르는 겁니다. 이 해역은 해양 생태계 보호 (시민 과학, 중성부력, 유령 어구)를 넘어 해양 복원 기술의 실험 현장이기도 합니다.
길리 전역에는 바이오락(Biorock)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이오락이란 낮은 전압의 전류를 금속 구조물에 흘려보내 바닷물 속 미네랄을 구조물 표면에 증착시키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전기로 산호가 잘 붙고 자랄 수 있는 인공 기반을 만들어주는 방식입니다. 이 기술을 적용한 구조물에서는 산호의 성장 속도가 일반 환경보다 3~4배 빠르고, 수온 상승에 의한 백화 현상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집니다. 길리 에코 트러스트(Gili Eco Trust)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지역 공동체와 함께 산호초 복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출처: Gili Eco Trust). 산호 보호 (부력조절, 리프세이프, 다이버 에티켓)야 말로 모든 다이버가 바라는 것이죠.
수중 예술가 제이슨 디케어스 테일러(Jason deCaires Taylor)가 길리 메노에 설치한 NEST 조각상군도 그냥 관광용 볼거리가 아닙니다. 48개의 실물 크기 인간 조각상은 중성 pH 소재로 제작되어 산호 폴립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도록 설계된 인공 어초입니다. 현재는 수많은 어류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아직 이 조각상들을 직접 보지 못했는데, 다음에 길리 메노에 가게 되면 꼭 다이빙으로 봐야 할 포인트로 점찍어 두고 있습니다.
길리 해역의 생태학적 가치는 학술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관광 증가가 산호초에 미치는 영향과 보존 전략에 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으며, 지역 공동체 주도의 해양 보호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PADI Travel).
길리 트라왕안에 두 번 가본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섬은 다이버에게 딱 맞는 수준의 포인트 구성, 거북이라는 확실한 볼거리, 그리고 해양 복원이라는 맥락까지 갖춘 보기 드문 곳입니다. 다음 방문에는 길리 메노에서 수중 조각상과 함께 산호 복원 현장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발리 스쿠버다이빙 (난파선, 만타, 개복치)을 계획 중이라면 하루이틀 여유를 더 잡아 길리까지 넘어가는 일정을 꼭 고려해 보시길 권합니다. 배 타는 수고가 아깝지 않을 만큼 물속 세상이 다르거든요!
참고: https://travel.padi.com/diving-in/gili-islands/
https://giliecotru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