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발리를 그냥 리조트 여행지로만 알고 있다면, 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모르는 겁니다. 저는 발리를 스쿠버다이빙만을 위해 다섯 번 넘게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전혀 다른 바다를 만났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거북이서부터 난파선, 만타, 개복치까지. 발리가 굉장히 큰 섬도 맞지만, 스쿠버다이빙 관점으로 보아도 발리는 한 번으로는 절대 다 볼 수 없는 곳입니다.
발리 스쿠버다이빙의 구조
발리에서의 다이빙에서 가장 많이 듣는 불만이 뭔지 아시나요? "기대했던 거 못 봤어요"입니다. 만타 보러 갔더니 없었다, 개복치를 기다렸는데 헛탕 쳤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발리 바다의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 들어가면 그렇게 됩니다.
발리 바다가 이렇게 풍요로운 이유는 인도네시아 통과류(ITF: Indonesian Throughflow) 덕분입니다. ITF란 태평양의 차고 영양분이 풍부한 해수가 인도양 방향으로 흐르면서 발리 인근 해역을 통과하는 거대한 해류를 말합니다. 이 흐름이 발리 바다에 지속적으로 영양염류를 공급하고, 그 결과 먹이사슬 전체가 활성화됩니다. 단순히 물이 맑다는 수준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가 다른 겁니다.
발리는 산호 삼각형(Coral Triangle)의 핵심 구역에 위치합니다. 산호 삼각형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푸아뉴기니 등 6개국에 걸친 해역으로, 전 세계 산호의 76%, 해양 어종의 37% 이상이 서식하는 해양 생물 다양성의 중심지입니다(출처: Frontiers in Marine Science). 이 사실을 알고 들어가면 바다가 달리 보입니다.
툴람벤, 초보 때 아무것도 못 봤던 그 난파선
저는 툴람벤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다이빙했을 때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오픈워터를 딴 이후 처음 하는 다이빙이어서 부력조절기인 BCD(Buoyancy Control Device) 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 수중에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BCD란 공기를 주입하거나 빼내면서 수중에서 몸의 부력을 조절하는 장비인데, 이게 익숙하지 않으면 몸이 계속 떠오르거나 가라앉아 주변을 볼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딱 그 상태였어요.
USAT 리버티호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툴람벤 해안에 좌초됐다가, 1963년 아궁 화산 폭발로 인한 지각 변동으로 바닷속으로 밀려 내려간 난파선입니다. 약 120m 길이의 선체는 지금 400종이 넘는 어류가 서식하는 인공 어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 어초란 자연적인 암초를 대신해 물고기들이 산란하고 은신하는 구조물을 말합니다.
새벽 다이빙에 들어가면 대형 잭피쉬 떼가 선체 위를 빙빙 도는 군무를 볼 수 있고, 야간에는 범프헤드 패럿피쉬가 선체 안에서 잠을 자는 장면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제가 너무 다이빙 초보일 때 가서 이런 좋은 장면들을 다 놓쳤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아깝습니다. 툴람벤은 초보 때 가는 곳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실력이 붙은 뒤에 다시 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만타와 개복치, 누사 페니다에서 마주친 두 번의 순간
누사 페니다에서 처음 만타 가오리를 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거대한 날개 같은 실루엣이 뿌연 물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겁니다. 그때 느낌이 딱 하나였습니다. 고귀하다. 크고 조용하게 움직이는데, 압도당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몇 년 뒤 다시 누사 페니다를 찾았을 때는 개복치를 만났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다이빙이었는데, 수심을 깊게 타고 내려가니 멀리 거대한 둥근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고래상어만큼 보기 힘들다는 몰라 몰라(Mola alexandrini)였습니다. 수온이 꽤 낮았는데 흥분이 너무 커서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 생물을 누사 페니다에서 볼 수 있는 건 용승(Upwelling) 현상 덕분입니다. 용승이란 바람이나 해류의 영향으로 심층의 차고 영양분이 많은 해수가 표층으로 올라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차가운 물을 따라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번식하고, 그걸 먹으러 만타가 모이고, 개복치는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수심 20~30m권으로 올라옵니다. 자연이 맞춰놓은 시스템이 정교하기 그지 없네요.
누사 페니다에서 꼭 챙겨야 할 것, NDL과 잔압
발리에서 다이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름다운 생물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게 있습니다.
누사 페니다에서 개복치나 만타를 만나면 그 생물에 시선이 완전히 고정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그 순간 해양생물을 만났다는 황홀감에 수심계도 잔압계도 눈에 안 들어옵니다. 문제는 개복치 관찰이 이루어지는 수심이 상당히 깊다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NDL(No Decompression Limit)을 놓치면 위험해집니다. NDL이란 감압 없이 수면으로 안전하게 상승할 수 있는 최대 시간 한도를 말합니다.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은 기본적으로 무감압 범위 안에서만 진행되는데, 수심이 깊어질수록 NDL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누사 페니다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안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NDL과 잔압을 최소 1분 간격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일 것
- 용승으로 인한 급격한 수온 저하에 대비해 5mm 이상 슈트와 후드 착용을 권장
- 예측 불가한 다운 커런트(Down-current), 즉 수직 하강 조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현지 가이드 브리핑을 준수할 것
- 개복치 관찰 시 개체의 진행 경로를 가로막거나 1m 이내로 접근하지 않을 것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팀으로 들어간 다이버 전체의 안전에 직결됩니다. 짜릿한 경험은 안전하게 마무리됐을 때만 좋은 기억이 됩니다.
발리 다이빙은 갈수록 더 가고 싶어지는 곳입니다. 저도 이미 가본 툴람벤과 누사 페니다 외에 멘장안 섬의 월 다이빙이나 아메드의 마크로 포인트를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발리는 생각보다 훨씬 큰 섬이고, 각 포인트마다 전혀 다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누사 페니다의 거친 조류와 차가운 수온에서 짜릿한 도전을 마치셨다면, 다음 여정으로는 조금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추천합니다. 발리에서 보트로 금방 닿는 거북이들의 안식처, 길리 트라왕안 다이빙 (포인트, 거북이, 바이오락)은 긴장했던 몸을 녹이며 여유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거든요.
다음에 발리를 계획하신다면 한 포인트만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구역을 하나씩 추가해 보시길 바래요. 수면 위의 발리와 수면 아래의 발리는 완전히 다른 여행이라는 걸요!
참고: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marine-science/articles/10.3389/fmars.2021.606998/full
https://www.zubludiving.com/articles/zublu-insights/diving-tulambens-usat-liberty-wr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