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9월, 다이버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가 한 친구가 "올해는 좀 다른 데로 가보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필리핀만 다녀온 저희는 그 순간부터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이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이제 필리핀 바다가 익숙해져서일까요,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리서치 끝에 저희는 필리핀, 몰디브, 멕시코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각자의 장단점을 분석했고, 결국 각 지역이 주는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필리핀, 황제다이빙의 정석
필리핀은 저희 팀이 가장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확실합니다. 바로 '편안함'입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 저렴한 물가, 그리고 다이버를 위한 완벽한 서비스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코럴 트라이앵글(Coral Triangle)의 중심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여기서 코럴 트라이앵글이란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동티모르를 포함하는 삼각형 모양의 해역으로, 전 세계에서 해양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을 의미합니다(출처: Coral Triangle Initiative). 실제로 이 지역에는 전 세계 산호종의 약 75%, 암초 어류의 35% 이상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 다이빙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소위 '황제다이빙'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탱크 운반부터 장비 세팅, 심지어 장비를 입혀주는 것까지 전부 다이빙 크루가 도와줍니다. 처음 아닐라오에 갔을 때 저는 제 장비를 직접 들고 보트로 향했는데, 크루가 달려와서 가방을 낚아채듯 들어주더군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이게 필리핀 다이빙 리조트의 표준 서비스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필리핀의 주요 다이빙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닐라오: 매크로 생물 촬영의 메카, 누디브랜치와 작은 갑각류의 천국
- 보홀의 발리카삭: 거북이와 잭피쉬 떼를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포인트
- 팔라완의 코론: 침몰선 다이빙과 청정 호수 다이빙을 동시에 경험 가능
필리핀의 또 다른 장점은 수온입니다. 연중 27~29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3mm 웻수트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한 다이빙이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 작년 3월에 방문했을 때도 수온이 28도였고, 3일간 하루 3다이브씩 진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몰디브, 대물을 만나는 확률
몰디브는 필리핀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입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작년에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생 다이빙'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몰디브는 26개의 아톨(Atoll)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톨이란 산호초가 고리 모양으로 발달하여 형성된 환초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화산섬이 침강하면서 그 주변의 산호초만 남아 만들어진 지형입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덕분에 몰디브는 강한 조류가 흐르는 채널 다이빙이 주를 이룹니다.
친구는 바아 아톨에서 만타가오리 30여 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5월부터 11월까지는 하니파루 베이에서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수백 마리의 만타가 모이는 시기라고 합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이 지역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몰디브 다이빙의 핵심은 리브어보드(Liveaboard)입니다. 리브어보드란 배 위에서 숙박하면서 여러 다이빙 포인트를 순회하는 방식의 다이빙 투어를 의미합니다. 육상 리조트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먼 포인트까지 갈 수 있고, 하루에 4~5회의 다이빙도 가능합니다.
다만 몰디브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7일 일정 기준으로 항공권과 리브어보드 비용을 합치면 최소 400만 원 이상을 각오해야 합니다. 저희 친구는 리조트형 다이빙을 선택했는데, 머큐어 몰디브 쿠두에서 머물며 리조트 바로 앞 포인트에서 다이빙했다고 합니다. 아코르 멤버십 혜택으로 식사 할인도 받았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다음번 제 차례에는 이런 전략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멕시코, 동굴 속 빛의 향연
멕시코 다이빙은 제가 올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목적지입니다. 특히 유카탄반도의 세노테는 다른 어떤 바다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세노테(Cenote)는 석회암 지반이 함몰되어 형성된 천연 동굴 호수입니다. 쉽게 말해 수만 년에 걸쳐 빗물이 석회암을 녹이면서 생긴 거대한 지하 수로 시스템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카탄반도에만 약 6,000개 이상의 세노테가 존재하는데, 다이빙이 가능한 곳은 그중 일부입니다.
세노테 다이빙의 백미는 '라이트 빔(Light Beam)' 현상입니다. 동굴 천장의 틈새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만들어지는 광선 효과는 수중 사진가들에게는 최고의 피사체입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그 사진들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민물과 코발트블루의 바닷물이 만나는 경계층인 할로클라인(Halocline)은 마치 수중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멕시코 다이빙의 주요 시즌은 다음과 같습니다.
- 9~10월: 고래상어 시즌의 끝자락, 수온 27~29도로 쾌적
- 6~9월: 돛새치(Sailfish) 시즌, 특히 이슬라 무헤레스 근처
- 11~3월: 불샤크(Bull Shark) 시즌, 플라야 델 카르멘 인근
다만 세노테 다이빙은 난이도가 있습니다. 오버헤드 환경(Overhead Environment)이라고 부르는 이런 폐쇄 공간에서의 다이빙은 반드시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오버헤드 환경이란 수면으로 바로 상승할 수 없는 천장이 있는 환경을 의미하며, 동굴이나 난파선 내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일반 오픈워터 자격증만으로는 진입할 수 없고, 최소한 케이번(Cavern) 다이빙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출처: Divers Alert Network).
저희 팀은 올해 멕시코 투어를 계획 중인데, 아직 로그 수가 부족한 멤버들이 있어서 세노테는 입구 부근의 오픈 존만 다이빙하고, 대신 코수멜에서 드리프트 다이빙으로 대물을 노리는 쪽으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해외 다이빙은 단순히 수중 생물을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각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생태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다이빙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 곧 다이버로서의 성장입니다. 필리핀에서 편안함과 다양성을 익히고, 몰디브에서 대물과 조류를 경험하고, 멕시코에서 특수 환경에 도전하는 이 모든 여정이 결국 로그북에 쌓이면서 여러분만의 다이빙 스토리가 완성됩니다.
어디를 선택하든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다이빙 후 현지 음식을 즐기고, 동료들과 그날의 다이빙을 이야기하며 웃는 그 순간이야말로 해외 다이빙 투어의 진짜 백미라는 것 말입니다. 올해는 어느 바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참고: https://blog.padi.com/the-best-places-to-try-diving/
https://www.coraltriangleinitiative.org
https://whc.unesco.org/en/list/1276
https://dan.org/safety-prevention/diver-safety/cave-d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