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거기서 뭐가 보여?"라는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시야도 안 나오는 바다를 상상했는데, 막상 제주에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면서 처음 마주한 수중 풍경은 그 편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죠. 동남아 바다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알록달록한 산호와 물고기들이, 제주 바다 속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열대와 온대가 만나는 곳, 제주 수중생태계
제주 바다가 이렇게 풍부한 데는 지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쿠로시오 해류에서 갈라져 나온 대마난류(Tsushima Warm Current)가 제주 남부 해안을 따라 흐르며 연중 수온을 비교적 따뜻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대마난류란 일본 규슈 서쪽을 거쳐 한반도 남해까지 이어지는 난류의 지류로, 열대 해역의 따뜻한 물을 온대 지역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덕분에 제주는 온대성 어류와 열대성 어류가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에코톤(Ecotone) 환경이 형성됩니다. 에코톤이란 서로 다른 두 생태계가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양쪽 생태계의 생물이 동시에 나타나 생물 다양성이 극대화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로 물속에 들어가 보면 자리돔이나 돌돔 같은 익숙한 물고기 옆으로 나비고기나 파랑돔 같은 열대 어종이 함께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게 진짜 제주 바다 맞나?' 싶었습니다. 최근에는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만타 가오리나 프로그피쉬(Frogfish), 해마 같은 희귀 생물의 목격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 바다의 지형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수중에도 주상절리 절벽, 수중 동굴, 아치 지형이 발달해 있습니다. 서귀포의 문섬과 섶섬 주변은 수직 벽(Wall)이 수심 40m 이상까지 이어져, 들어가는 순간부터 압도적인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제주 바다의 핵심, 연산호 군락의 실체
제주 수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연산호(Soft Coral)입니다. 서귀포 남쪽 해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연산호 군락지 중 하나입니다. 분홍색, 보라색, 노란색의 맨드라미산호류가 조류를 따라 일제히 흔들리는 광경은, 직접 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연산호는 경산호와 달리 석회질 골격 없이 유연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산호류를 말합니다. 이 유연한 구조 덕분에 조류가 흐를 때마다 마치 꽃밭이 바람에 흔들리듯 움직이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문화재청은 제주 문섬·범섬 일대의 연산호 군락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사계절 다이빙이 가능하다는 점도 제주만의 강점입니다. 겨울에도 수온이 14~15도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아 드라이슈트를 착용하면 연중 입수가 가능합니다. 드라이슈트(Dry Suit)란 슈트 내부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완전히 밀봉된 구조의 잠수복으로, 저온 환경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는 활동성이 좋은 웻슈트를 주로 착용하게 되는데요. 제주의 변화무쌍한 수온에 맞춰 스쿠버다이빙 수트 두께 선택 (3mm, 5mm, 레이어링) 을 미리 숙지해둔다면, 사계절 내내 추위 걱정 없이 쾌적한 다이빙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제주의 시즌별 수중 환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봄(3~5월): 수온이 서서히 오르는 시기. 시야가 불안정할 수 있음
- 여름(6~8월): 수면 수온 25도 이상. 수온 약층(Thermocline) 주의 필요
- 가을(9~11월): 수온이 가장 높고 시야 20~30m 이상 확보되는 최고 시즌
- 겨울(12~2월): 드라이슈트 필수. 한적한 환경에서 다이빙 가능
서귀포항에서 배로 5~10분이면 문섬, 섶섬, 범섬에 닿습니다. 섬에 내려주고 일정 시간 후 데리러 오는 '섬 다이빙' 방식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인데, 이게 생각보다 꽤 효율적으로 운영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따른 제주 해역의 아열대화가 지속되면서 생물 다양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제주 다이빙, 이것만은 반드시 알고 가세요
제주 바다가 아름답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제가 현지에서 다이빙을 반복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류입니다. 제주는 조석 간만의 차이에 따라 조류가 매우 강하게 흐릅니다. 특히 문섬 앞바다는 조류 변화가 워낙 급격해서 베테랑 다이버들도 긴장하는 포인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류를 무리하게 거슬러 헤엄치면 체력이 급격히 소모되므로, 현지 가이드의 브리핑을 반드시 따르고 조류 방향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두 번째는 수면 위 선박 문제입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처음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서귀포 인근 해역에는 다이버 선박, 낚싯배, 조업 어선이 상당히 많이 다닙니다. 수중에서 급상승(Rapid Ascent)을 하게 되면 수면에 올라오는 순간 선박에 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급상승이란 수중에서 수면까지 너무 빠르게 올라오는 행위로, 감압병 위험뿐 아니라 제주처럼 선박 통행이 많은 해역에서는 충돌 사고까지 겹칠 수 있어 더욱 위험합니다. 상승 전에는 반드시 레귤레이터의 퍼지 버튼을 눌러 공기방울을 수면으로 먼저 보내고, 수면 위 상황을 충분히 확인한 뒤 올라오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연산호를 보호하는 에티켓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중성 부력(Neutral Buoyancy)이란 물속에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인데, 이게 안 되면 핀킥이나 손짓 하나가 수십 년 자란 연산호를 순식간에 망가뜨립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연인 만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제주 바다는 아직도 저에게 설레는 곳입니다. 한 가지 아직 못 이룬 게 있다면 이른바 '청물'을 만나는 것입니다. 청물이란 외해의 맑고 차가운 해류가 유입되면서 시야가 사이판이나 괌처럼 뻥 뚫리는 현상을 부르는 다이버들의 표현입니다. 아직 그 행운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그 제주 바다를 꼭 보고 싶습니다. 해외 다이빙을 꿈꾸는 분이라면, 그 전에 제주를 먼저 경험해 보시길 바래요. 기대 이상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