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싼 카메라를 사면 좋은 사진이 나올까요?"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수중 촬영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집에 있던 미러리스 카메라에 저렴한 하우징만 사면 당장 멋진 바닷속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다이빙에서 찍은 사진들은 온통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뒤범벅된, 도저히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수중 촬영은 장비의 스펙보다 빛의 원리를 이해하고 환경에 맞는 세팅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고프로와 미러리스, 수중 환경에서의 차이점
물속은 공기와 완전히 다른 광학 환경입니다. 빛의 굴절률(n ≈ 1.33)이 공기보다 높아 피사체가 실제보다 약 25% 가깝고 크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굴절률이란 빛이 매질을 통과할 때 휘어지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숫자가 높을수록 빛이 더 많이 휘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 빛부터 흡수되기 시작해서 5미터만 내려가도 대부분의 붉은색이 사라집니다(출처: PADI).
이런 환경에서 고프로는 확실히 편리합니다. 작고 가벼워서 부력 조절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고, 초광각 렌즈 덕분에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넓은 장면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수중 촬영을 시도했을 때도 고프로였다면 훨씬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고프로의 센서 크기는 대략 1/1.9인치 수준으로 매우 작습니다. 센서 크기가 작다는 것은 한 번에 받아들이는 빛의 양이 적어 어두운 환경에서 노이즈가 심하게 발생하고, 명암의 계조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반면 미러리스 카메라는 APS-C나 풀프레임 같은 큰 센서를 탑재합니다. 다이나믹 레인지(Dynamic Range)가 넓어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동시에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다이나믹 레인지란 카메라가 한 장면에서 가장 밝은 부분부터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합니다. 멕시코 세노테처럼 동굴 안쪽은 깜깜한데 입구에서 쏟아지는 빛줄기(Light Beam)를 동시에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능력이 결정적입니다. 제가 미러리스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습니다.
레드필터, 왜 필수일까
제가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우징에 넣고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 뷰파인더로 보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산호의 디테일도 선명하게 보였고 물고기들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진이 푸르스름하고 생기 없는 색감으로 나온 겁니다. 다이버 친구가 보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레드필터 안 썼지?"
수중에서는 수심에 따라 특정 색상의 빛이 흡수됩니다. 붉은색은 수심 5미터 정도에서부터, 주황색은 10미터, 노란색은 20미터 수심에서 대부분 사라집니다(출처: Scuba Diving Magazine). 레드필터는 이렇게 소실된 붉은색 파장을 물리적으로 보정해주는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 렌즈 앞에 붉은색 유리를 덧대어 파란색으로 치우친 색 균형을 맞춰주는 원리죠.
레드필터를 장착하고 다시 촬영한 사진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산호의 붉은색과 주황색이 살아나고, 물고기의 노란색 비늘도 선명하게 표현되더군요. 물론 화이트 밸런스를 수동으로 조절하거나 RAW 파일로 후보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레드필터를 쓰면 촬영 현장에서 바로 자연스러운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레드필터는 빛을 일부 차단하기 때문에 수심 10미터 이내의 얕은 수역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촬영 장비보다 중요한 것들
솔직히 처음부터 고가의 장비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오히려 스쿠버다이빙 초보 때는 장비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성부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무거운 카메라 하우징을 들고 들어가면 바닥의 모래를 일으키거나 산호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50회 이상의 다이빙 경험이 쌓인 후 촬영 장비를 추가하라고 권장하는데, 이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조언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수중 촬영을 시작한 건 100회 정도 다이빙을 한 이후였습니다. 그때쯤 되니 제 호흡과 부력 조절에 자신이 생겼고, 카메라를 들고도 안정적으로 수중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있던 중고 미러리스 카메라와 저렴한 하우징(약 30만 원대)으로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더 좋은 장비로 업그레이드했지만, 그 저렴한 조합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중 촬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빛의 방향과 각도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매크로 촬영을 할 때는 외부 스트로브(Strobe) 조명이 필수적입니다. 스트로브란 수중 전용 플래시를 말하는데, 육상용 플래시보다 훨씬 강한 출력으로 물속에서 빛을 확산시킵니다. 스트로브를 피사체의 측면이나 위쪽에서 45도 각도로 비추면 입체감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작은 갯민숭달팽이를 처음 제대로 찍었을 때가 기억나는데, 스트로브 하나를 추가하고 나니 사진의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현재 제가 매번 다이빙 때마다 챙기는 장비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러리스 카메라 본체와 하우징
- 레드필터 (수심 10m 이내 다이빙 시)
- 외부 스트로브 2개와 연결 암
- 여분 배터리 2개 (수중에서 교체 불가하므로 필수)
- 하우징 오링 그리스 (물 유입 방지)
매번 준비하고 세척하는 과정이 꽤 번거롭긴 합니다. 하지만 다이빙이 끝나고 그날 찍은 사진을 확인할 때, 함께 다이빙한 친구들의 모습이나 마주쳤던 바다거북의 눈빛이 선명하게 담겨 있으면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기분입니다.
수중 촬영은 기술과 경험이 쌓일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분야입니다. 처음에는 고프로로 간단하게 시작해서 촬영 감각을 익히고, 점차 미러리스와 조명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의 가격이 아니라 물속에서의 안정성과 빛을 읽는 눈입니다. 여러분의 로그북에도 글자뿐 아니라 그날의 푸른 감동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참고: https://www.scubadiving.com/best-underwater-cameras-beginners
https://www.padi.com
https://www.scubadiv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