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네그로스섬의 두마게티는 검은 화산사 지형의 마크로 다이빙 성지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해양 보호 구역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곳입니다. 두마게티 앞바다에서 화산성 기포가 모래 바닥을 뚫고 자연적으로 올라온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이곳을 접했을 때, 한 지역에서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수중 세계가 공존한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두마게티를 방문해 이곳 바다를 직접 들어가보고 나서야 믿게 되었죠.
화산이 만든 수중 지형, 검은 모래 속에 무엇이 있을까
두마게티 다이빙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다윈(Dauin) 해안은 인근 탈리니스 산의 화산 활동 영향으로 검은색 화산사, 즉 볼카닉 샌드(Volcanic Sand)로 이루어진 머크(Muck) 지형이 펼쳐져 있습니다. 머크 다이빙이란 산호초나 암반이 아닌, 뻘이나 모래 바닥처럼 얼핏 황량해 보이는 환경에서 작은 생물들을 찾아내는 다이빙 방식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입수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지형에서 특히 유명한 포인트가 바로 라르가한(Laragahan)입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 봤는데, 모래 바닥 곳곳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버블 커튼(Bubble Curtain)인데, 여기서 버블 커튼이란 해저 지열 활동으로 인해 화산성 기포가 넓은 범위에 걸쳐 연속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막탄 마리곤돈 케이브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버블은 다이버들의 날숨으로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것이지만, 라르가한의 버블은 땅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라 그 희귀성이 다릅니다. 게다가 한두 곳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넓은 지형에서 동시에 올라오기 때문에 보는 맛이 훨씬 큽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따뜻한 모래였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3~4미터 넓이로 거므스름하게 색이 다른 모래 구간이 나타나는데, 손을 넣어보면 확실히 주변보다 온도가 높습니다. 지열이 직접 전달되는 구간인 셈인데, 이런 포인트를 수중에서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꽤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마크로 다이버라면 평생 한 번은 와야 할 곳
두마게티가 전 세계 마크로(Macro) 다이버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마크로 다이빙이란 수 센티미터에 불과한 초소형 해양 생물들을 클로즈업으로 관찰하고 촬영하는 다이빙으로, 일반적인 산호초 다이빙과는 완전히 다른 집중력과 기술이 요구됩니다.
다윈의 검은 모래 속에는 프로그피쉬(Frogfish), 고스트 파이프피쉬(Ghost Pipefish), 블루링 옥토퍼스(Blue-ringed Octopus) 같은 희귀 생물들이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 다이버들이 가장 열광하는 생물 중 하나가 플램보이언트 커틀피쉬(Flamboyant Cuttlefish)입니다. 플램보이언트 커틀피쉬란 선명한 보라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화려한 색 변화를 보이며 모래 바닥을 기어다니는 갑오징어의 일종으로, 이 지역에서 조우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특정 생물과의 조우 확률이 높다고 알려진 포인트가 실제로 그만큼 자주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두마게티는 그 기대를 꽤 충족시켜 줍니다.
그런데 이 머크 다이빙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윈의 화산사는 조금만 건드려도 순식간에 뿌옇게 일어나면서 시야가 차단되는 실트아웃(Silt-out) 현상이 발생합니다. 실트아웃이란 미세한 퇴적물이 수중에 부유하면서 시야가 수 미터 이내로 급격히 좁아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크로 촬영에 집중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핀킥으로 바닥을 스치게 되는데, 그 순간 뒤따르는 다이버 전체가 피해를 봅니다. 중성부력과 프로그킥 숙달이 이곳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다윈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 마크로 생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로그피쉬(Frogfish):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위장하는 소형 어류
- 고스트 파이프피쉬(Ghost Pipefish): 수초나 산호 사이에서 몸을 숨기는 투명에 가까운 어류
- 블루링 옥토퍼스(Blue-ringed Octopus): 파란 반점이 빛나는 맹독성 소형 문어
- 플램보이언트 커틀피쉬(Flamboyant Cuttlefish): 화려한 색 변화로 유명한 갑오징어
아포 섬, 바다거북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유
두마게티에서 필리핀 전통 아웃리거 보트인 방카(Banka)로 약 30~40분을 달리면 아포 섬(Apo Island)에 닿습니다. 이 섬이 단순한 다이빙 포인트를 넘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실리만 대학교(Silliman University)의 엔젤 알칼라(Angel Alcala) 박사가 주도한 지역 공동체 기반 해양 보호 구역(MPA, Marine Protected Area) 모델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MPA란 특정 해역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어획과 개발 활동을 제한하는 구역으로, 아포 섬의 사례는 이후 전 세계 해양 보존 정책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보호 구역 지정 이후 아포 섬 내 어종 다양성과 개체 수가 증가했고, 이 효과가 인근 비보호 구역으로 번져나가는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까지 입증되었습니다(출처: Frontiers in Marine Science). 스필오버 효과란 보호 구역 내에서 번식한 생물 개체들이 경계 밖으로 이동하면서 주변 해역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현상입니다.
아포 섬에서 입수하면 푸른바다거북(Green Sea Turtle)과 매부리바다거북(Hawksbill Turtle)을 정말 자주 만납니다. 오랜 보호 덕분에 이들은 다이버를 경계하지 않고 산호 사이에서 유유히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합니다. 조류가 강한 포인트도 있는데, 특히 코코넛 포인트(Coconut Point)는 조류가 세기로 유명합니다. 입수 전 가이드 브리핑을 꼼꼼히 듣고,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몸을 맡기는 드리프트 다이빙(Drift Diving) 방식이 요구됩니다. 드리프트 다이빙 (조류 다이빙, 다운커런트, SMB)이란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진행하는 다이빙으로, 체력 소모가 적고 넓은 지형을 효율적으로 탐사할 수 있습니다. 실력이 아직 부족한 초보 다이버라면 입수 전에 마스터에게 미리 세심한 케어를 부탁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아포 섬의 소소한 재미와 주의사항
아포 섬 다이빙에서 제가 직접 겪어보니 예상 밖이었던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수면 휴식 시간에 방카 위에서 쉬고 있으면, 근처에서 작은 쪽배를 탄 상인들이 다가옵니다. 배 위로 올라와 아포 섬 기념 티셔츠 샘플들을 쭉 펼쳐 보여주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격을 흥정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살 수 있습니다. 저희 팀도 각자 마음에 드는 티셔츠 디자인을 골라 구입했고, 그날 저녁에 다 같이 입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마게티 다이빙 트립에서 그 기억이 오히려 꽤 오래 남았습니다.
해양 보호 구역이 엄격히 관리되는 만큼 거북이나 산호를 만지는 행위는 벌금 및 퇴출 조치를 받을 수 있으니, 관찰은 거리를 두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기본 에티켓을 지키는 것이 아포 섬의 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다음 세대 다이버들도 그대로 누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출처: Apo Island Marine Reserve).
마크로를 좋아하는 다이버라면 두마게티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오게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윈의 머크 포인트부터 아포 섬의 거북이 군락까지, 한 투어 안에서 이만큼 다양한 수중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 중성부력 (호흡조절, 웨이트, 안전)과 프로그킥 마스터 (발차기 효율, 부유물 방지, 실전 연습법)로 실력이 탄탄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가야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모든 준비가 된 다이버라면, 두마게티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oete-ltandc.org/galerie/48304/apo-island-marine-reserve-successful-community-based-tourism-management.html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marine-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