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빙 라이트를 고를 때 "무조건 밝은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가장 저렴한 라이트를 샀다가 물속에서 켜져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약한 빛에 당황했고, 친구가 빌려준 개조 라이트는 너무 밝아서 오히려 부유물만 잔뜩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수중에서는 단순히 루멘 수치가 높다고 좋은 게 아니라, 빛을 어떻게 모아서 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루멘과 조사각의 조합, 그리고 수중 광산란 원리를 이해하면 본인에게 맞는 라이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루멘보다 중요한 건 빛의 밀도입니다
다이빙 라이트 제품 설명을 보면 루멘(Lumen) 수치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수중 광학에서는 럭스(Lux)라는 개념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루멘이란 광원 자체가 뿜어내는 빛의 총량을 의미하고, 럭스란 특정 지점에 실제로 도달하는 빛의 밝기(조도)를 뜻합니다(출처: Scuba Diving Magazine).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약 800배 높기 때문에 빛의 입자가 물분자와 충돌하며 에너지를 빠르게 잃습니다. 아무리 루멘이 높아도 빛이 넓게 퍼지면(Flood) 깊은 수심까지 제대로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중 라이트는 높은 루멘을 좁은 면적에 집중시켜 럭스를 높이는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저도 처음 라이트를 샀을 때 3000루멘이라는 숫자만 보고 구입했는데, 막상 물속에서 켜보니 빛이 사방으로 퍼져서 정작 보고 싶은 곳은 어둡더라고요. 루멘이 높다고 무조건 밝은 게 아니라, 그 빛을 어디에 얼마나 집중시키느냐가 실제 성능을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에서는 1000~2000루멘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 경험상 조사각이 좁은 라이트라면 1000루멘으로도 나이트 다이빙에서 충분히 밝게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조사각이 넓으면 3000루멘도 물속에서는 생각보다 어둡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조사각과 백스캐터, 탁한 물에서의 시야 확보
라이트의 조사각(Beam Angle)은 다이빙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조사각이란 빛이 퍼지는 각도를 의미하는데, 크게 스팟(Spot) 빔과 플러드(Flood) 빔으로 나뉩니다.
스팟 빔은 5° ~ 12° 정도의 좁은 각도로 빛을 집중시켜 먼 곳까지 도달하게 합니다. 주로 버디와 수신호를 주고받거나 시야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용합니다. 플러드 빔은 60° ~ 120°로 넓은 범위를 고르게 밝혀서 수중 사진이나 영상 촬영에 유리합니다.
문제는 부유물이 많은 환경입니다. 서해나 동해처럼 미역 조각, 플랑크톤, 침전물이 떠다니는 곳에서 넓은 조사각의 라이트를 켜면 백스캐터(Backscatter) 현상 때문에 오히려 시야가 나빠집니다. 여기서 백스캐터란 빛이 물속 미세 입자와 부딪혀 반사되어 다이버의 눈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안개 낀 밤에 자동차 상향등을 켜면 앞이 더 안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제가 친구 라이트를 빌렸을 때가 딱 그랬습니다. 너무 밝아서 좋을 줄 알았는데, 부유물이 조금만 있어도 제 불빛 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마치 눈보라 속에서 손전등을 켠 것처럼 하얗게 산란된 빛만 가득했습니다.
조사각이 좁고 직진성이 강한 스팟 라이트는 다이버의 시선과 빛의 경로 사이 각도를 좁혀줍니다. 부유물에 반사된 빛이 눈으로 직접 돌아오는 양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탁한 물속에서도 피사체를 뚫고 지나가는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Marine Technology Society Journal의 연구에 따르면, 수중 탐사 로봇도 혼탁한 환경에서는 카메라 렌즈축에서 조명을 멀리 떨어뜨리고 좁은 빔을 사용한다고 합니다(출처: Marine Technology Society).
국내 바다에서 다이빙한다면:
- 스팟 빔(조사각 10° 내외)을 기본으로 선택
- 보조 라이트로 플러드 빔을 함께 휴대
- 부유물이 많은 날은 스팟만 사용
실전 선택: 렌탈부터 시작하고 무게도 고려하세요
처음 야간 다이빙을 하거나 동굴 다이빙을 계획한다면, 덥석 라이트를 구입하기보다는 다이빙샵에서 렌탈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이트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품이 무엇인지 모르고 구입했다가는 저처럼 다시 사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라이트가 무거운 경우가 많습니다. 루멘이나 조사각뿐 아니라 무게와 부력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고출력 라이트는 대부분 배터리가 크고 하우징이 두꺼워서 육상에서 들 때보다 물속에서 중성부력 맞추기가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절대 주의할 점은 다이빙 라이트를 지상에서 오래 켜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중 라이트는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수랭식 쿨링 설계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수랭식 쿨링이란 물의 높은 열전도율을 이용해 LED에서 발생하는 열을 빠르게 방출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물의 열전도율은 공기보다 약 20배 이상 높아서,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하우징을 통해 내부 열을 물로 전달하여 안정적으로 고출력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지상에서 켜두면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LED가 손상되거나 배터리가 부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저도 테스트한답시고 육상에서 5분쯤 켜뒀다가 라이트 헤드가 뜨거워져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라이트를 고를 때는 아래 사항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세요:
- 주로 다이빙하는 환경의 수질(맑음/탁함)
- 사용 목적(수신호/탐색/촬영)
- 무게와 부력 특성
- 배터리 지속 시간과 교체 편의성
맑은 열대 바다에서 수중 영상을 찍고 싶다면 넓은 조사각과 높은 연색성(CRI)을 가진 플러드 라이트가 정답입니다. 하지만 국내 바다처럼 부유물이 있거나 어두운 난파선 내부, 나이트 다이빙에서 버디와 확실한 소통을 원한다면 좁은 조사각과 강한 직진성을 가진 스팟 라이트를 선택하는 게 맞습니다.
빛은 바다의 색을 돌려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해주는 언어입니다. 광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선택한 라이트 하나가 당신의 다이빙 경험을 뿌연 안개 속에서 선명한 우주로 바꿔줄 것입니다. 처음엔 렌탈로 시작해서 본인의 다이빙 스타일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라이트를 신중하게 고르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blog.padi.com/beginners-guide-to-buying-a-dive-light/
https://www.scubadiving.com
https://www.mtsociety.org